다시 듣기
  • 작성일 작성일 : 2018-01-13 20:04 / 조회 : 510
법[法]

 글쓴이 : 박준 (119.♡.236.99)

법[法]

법[法]은 다르마(Dharma 산스크리트어, 담마Dhamma 빠알리어)를 한문으로 번역한 것이다. 달마(達磨)는 다르마를 한문으로 음사(음역)한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소수의 지배계층이 사용하던 산스크리트어가 아니라 당시 부처님께서 활동하시던 갠지스강(항하恒河) 유역에서 가장 큰 국가였던 마가다국의 대중들이 사용하던 고대인도 민중어인 마가다어로 주로 설법을 하셨다. 그러나 마가다어는 사장되었고 마다다어와 가장 (거의) 유사한 고대인도어로 가장 널리 가장 많이 사용되었던 고대인도 민중어가 빠알리어인데, 이 빠알리어가 후대 제자들이 부처님 말씀을 기록한 경전 모음인 니까야를 기록하는데 사용되었다. 니까야는 부처님과 그 제자들의 언행록(言行錄; 어떤 사람의 말과 행동을 적어 모은 기록)이다. 이 언행록에 실려있는 제자들과 함께하는 부처님의 생활(行)은 매우 검소하고 소박하면서도 정갈하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설법(법法을 설명)하시는 부처님의 언어(言) 또한 매우 소박하면서도 적확(적절+명확)하다.

빠알리어로 기록된 니까야를 산스크리트어로 옮겨서 편찬한 경전 모음을, 이른바 대승경전(금강경, 화엄경, 법화경 등)이 중국어(한문)로 번역되던 AD 5세기 경 이후에, 중국에서 번역 편찬한 경전 모음이 아함경(阿含經)이다. 아함(阿含)은 산스크리트어 아가마(āgama)를 중국어(한문)로 음사한 것으로 법장(法藏) 또는 전교(傳敎)라고 한역된다. 산스크리트어 아가마(āgama)의 뜻은 전승(傳承), 즉 붓다(석가모니 부처님)의 말씀을 기록해서 전해져 내려왔다는 뜻이다. 아함경(阿含經, 아가마 수트라)은 ‘붓다의 말씀(가르침, 법法)을 전하는 경전 모음’이라는 뜻이다.

부처님께서 입멸(빠리-닙바나, 무여열반)하신 직후 얼마 동안은 제자 아라한들이 부처님 말씀(가르침, 법法)을 합송으로 후대에 전달했다. 합창을 하면 한 사람이 틀린 것을 바로 알 수 있는 것처럼 합송으로 후대에 전달하는 것이 부처님 말씀에 대한 변질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갈수록 아라한의 수가 줄어들고 전쟁 등의 장애요소가 생기고 부처님 말씀(가르침, 법法)을 전파하는 지역이 넓어지면서 문자로 기록하여 전달할 필요가 생겼다.

.
법(法)은 ‘물 수(水) + 갈 거(去)’가 합성된 한자어로 ‘물(水)이 (자연의 법칙에 따라) 흘러간다(去)’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이 글자는 물이 끊임없이 흘러가되 거기에는 일정한 길(법칙)이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다르마(담마)를 법(法)으로 한역한 것은 어느 정도 적절한 번역이었다. 그러나 다양한 뜻을 가진 다르마(담마)를 모두 법(法)으로 한역한 번역의 경직성(그리고 무아無我와 같은 부적절한 번역)은 한역(한문) 경전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드는 주요한 원인이 되었다.

무아(無我)는 부처님께서 사용하신 고대인도어 아낫따(an·Atta 빠알리어, an·Atman 산스크리트어)를 한문으로 번역한 것이다. an·Atta(an·Atman)는 ‘Atta(Atman; 고정불변하고 독립적인 존재, 실체)가 아니다(an)’라는 뜻이다. (영어 un·happy의 un처럼 빠알리어와 산스크리트어에서 an은 단어 앞에 붙는 부정형 어두인데 모음으로 시작하는 단어 앞에 붙는다. 자음으로 시작하는 단어 앞에는 a가 붙는다)

’무아(無我), 나(我)는 없다(無)’라는 말과 ‘아낫따(an·Atta), 나(를 포함하여 우주자연에 실존하는 모든 존재)는 고정불변하고 독립적인 존재(Atta)가 아니다(an)’라는 말의 차이는 천지 차이다. 특히 부처님 가르침(佛敎, 佛法)을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부처님 가르침을 전체적으로 잘 이해한 후에는 그 차이가 미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
다르마(Dharma, 담마Dhamma)라는 용어의 기원은 BC 2000~1000에 걸쳐서 성립된 인도의 고전인 《베다》에까지 소급된다. 베다시대의 다르마는 천칙(天則, 리타) 등과 함께 자연계의 법칙, 인간계의 질서를 나타내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그 후 브라마나·우파니샤드 시대(BC 1000~100)에는 ‘인간의 육체적 정신적 행위’를 규정하는 것에까지 그 사용 범위가 확대되었다.

담마(Dhamma, 다르마Dharma)라는 말은 인도 사회에서 현재도 보편적으로 두루 사용되고 있는 일상어다. 아이들도 자주 사용하는 말이다. 힌두교(Hinduism; 힌두는 인도대륙을 의미하는 신두라는 말에서 유래됨) 또는 인도교는 서구 사람들이 지칭하는 말이고 인도 사람들은 힌두교를 ‘사나타나 다르마(Sanātana Dharma; 영원한 다르마)’교라고 부른다.

이처럼 담마(다르마)라고 하는 것은 매우 다양하고 폭넓은 의미를 가지는 말이므로, 우리가 「담마는 이런 의미다」라고 한마디로 고정하여 번역하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 인도에서 다양하게 사용되는 담마(다르마)라는 단어의 의미를 살펴보자. 


당연하게 일어나는 사건 
세상에서 당연하게 일어나는 일을 「담마」라고 말한다. 피할 수 없는 것, 아무리 애써도 결국 그렇게 되는 것을 말할 때 사용된다. 예를 들어, 아침의 다음은 낮이 된다든가, 겨울이 되면 춥다든가, 봄이 되면 따뜻해져 꽃이 피는 등, 당연하게 일어나는 것은 담마인 것이다. 즉 자연법칙을 포함하여 당연하게 일어나는 사건에 대해 담마라고 한다. 예를 들어 「시간이 지나면 밤이 되는 것」은 누가 바꾸려고 해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한 경우에 「그것은 담마야!」라고 말한다. 
  
본연의 모습(실상)
「본연의 모습」을 담마라고 말한다. 「사람으로서 갖추어야 할 본연의 모습」도 담마라고 말한다. 그래서 이때의 담마는 도덕적인 가치관 또는 희망하는 가치관으로도 된다. 예를 들어 「사람은 진실을 말해야 한다,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담마야!」라고 말한다. 「담마야」라고 말하면, 「그것은 담마이니까 당연한 일이다」라는 뉘앙스가 된다. 「당신에게는 어떤 담마도 없다」라고 말하면, 「당신은 예의범절이 없는, 몰상식한 사람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된다. 「사람으로서 갖추어야 할 본연의 모습」을 갖추지 못한 사람, 예의범절이 없는 사람, 인간으로서 도덕적이지 못한 사람을 가리켜 「담마가 없는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다. 부도덕한 범죄자는 「아담마(a·Dhamma)의 사람」(담마를 부순 사람, 담마가 없는 사람)이라고 불린다.
  
지키고 따라야 할 것 
「지켜야 할 신념」도 담마다. 인도에서 「사람은 무엇에 따라서 행해야 하는 것인지요?」라고 물었다면, 「물론 담마에 따라야 합니다」라고 곧바로 대답이 되돌아온다. 「지켜야 할 것」이란 자신의 안에 있는 고귀한 것, 「따라야 할 것」이란 자신의 밖에 있는 고귀한 것으로 구분하기도 하지만, 그 어느 쪽도 「담마」라고 하는 말을 사용한다. 즉, 무엇인가 고귀한 것, 자신의 생명같이 중요한 것, 「전부를 잃어도 이것만은 지키고 따르겠어」라고 생각되는 것도 「담마」인 것이다. 
  
삶의 방법으로서의 가르침 
우리에게 삶의 방법을 가르쳐 주는 분의 말씀도 「담마」다. 예를 들어, 부처님이나 예수님의 말씀이 사람들이 일생 따라야 할 가르침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렇게 사람들의 마음을 선하게 증장시키는 가르침도 「담마」라고 말한다.
  
법칙 
담마에는 「법칙」이라고 하는 의미도 있다. 예를 들어 과학에서 발견하는 「물질은 어떤 법칙에 따라 어떻게 작용하고 어떻게 반응하는 것인가」라는 것도 담마다. 물론 인과 법칙도 담마다. 부처님께서는 인과 법칙을 설하셨으므로, 이 의미에서 「부처님께서는 담마를 설하셨다」라고 할 수가 있다. 
  
법률과 그 이념 
법률도 담마라고 말한다. 재판관은 「담마를 지키고 담마에 따라 판결하는 사람」이다. 또, 법률을 만들거나 정치를 할 때는 어떤 이념에 근거하고 있다. 정치나 법률에는 이상으로서의 이념이 있다. 그러한 법률을 만들게 하고 정치를 구현하게 하는 이념과 같은 것도 「담마」라고 말한다. 법률가나 정치가나 왕은 「담마」를 지키고, 「담마」에 따라서 생활하지 않으면 안 된다.
  
현상 
(물질, 정신적인) ‘모든 것은 「현상」이다’ 라는 의미에서의 모든 것도 「담마」라고 말한다.

이와 같이 인도에서 「담마(다르마)」라는 말은 매우 폭넓은 의미로 사용되어 왔다. 말을 배울 때부터 「담마(다르마)」라는 말을 듣고 사용한 인도 사람은 문장의 맥락에서 용이하게 그 의미를 파악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우리들이 올바르게 그 의미를 번역하는 것은 어려운 일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
부처님 말씀(가르침, 설법; 법法을 설명함)을 기록한 경전에서 담마(다르마)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① 진리와 그 진리의 합리성을 가리킨다. 
연기(緣起)는 담마라고 하는 말이 이 뜻이다. 연기의 이치는 보편타당한 진리, 즉 보편적이고(예외가 없고) 타당한(합리적인) 진리(진실한 이치)라는 말이다. 이것은 보편적인(예외가 없는) 법칙의 의미와도 상통한다.

② 법칙과 그 법칙의 보편성을 가리킨다.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진리는 부처님이 계시든 안 계시든, 인간이 있든 없든 전혀 상관이 없는, 우주자연의 법칙이고 존재 방식이다. ‘생명과 물질의 세계가 어떤 식으로 생·멸(생기·소멸)하고 변화하는가?’ 라는 그 실상(실제 모습)을 명확히 설(설명)한 보편적인(예외가 없는) 법칙(담마)이다. 그 담마는 신에 의해서 계시를 받은 것이거나, 부처님에 의해서 창조된 것이 아니다. 단지 부처님께서는 수행을 통해서 그 담마를 발견한 사람일 뿐이다.

③ 인간이 지켜야 할 바른 도리, 즉 윤리성을 가리킨다.
아소카 왕의 법칙문(法勅文)은 상기한 합리성과 윤리성을 동시에 포함하고 있다.

④ 붓다(석가모니불,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 불법(佛法; Buddha-dhamma)을 가리킨다. 
팔만사천법문(八萬四千法門), 불(佛)·법(法)·승(僧)의 삼보(三寶) 중 법보 등이 이러한 의미로 사용되며, 나아가 경전(經典)을 의미하기도 한다. 또한 법통(法統)·법호(法號)·법회(法會)·법고(法鼓)·법등(法燈) 등은 모두 불법의 의미이다. 그리고 불법(佛法; 석가모니불의 가르침)은 합리성·보편성·윤리성이 있으므로 ①, ②, ③의 의미도 당연히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⑤ 실상과 진리를 가리킨다.
가르침의 내용인 실상(존재의 실제 모습; 연기의 실상)과 진리(진실한 이치, 자연의 이치/법칙, 연기의 이치/법칙; 연기의 진리)를 가리킨다. 부처님께서는 자신이 깨달은 ‘사실(실상)과 진리’를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가르치셨다.

⑥ 사물(事物)을 가리킨다. 
이 세상(우주자연)에 실존(실제 존재)하는 모든 사물, 물질-정신적인 모든 것을 가리킨다. 일체법(一切法, 諸法; sabbe dhamma), 제법무아(諸法無我) 등이 이러한 의미로 사용된다.

사물을 실체(고정불변하고 독립적인 존재)로 보아서는 안된다는 가르침은 부처님의 12처(十二處; 6근+6경) 설법(법法을 설명함)에 잘 나타나 있다. 여섯 인식기관[六根: 眼·耳·鼻·舌·身·意]과 그에 대응하는 여섯 인식대상[六境: 色·聲·香·味·觸·法]에서 법[法]은 인식·사고 기능을 하는 의[意: mano]의 대상이다. 이때의 법은 실체적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인식의 대상으로 파악된다. 모든 존재는 독자적으로(독립적으로,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연기(조건에 따라 상호의존)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며 또한 주관과 객관의 상호 의존적인 관계에서 그 존재의의를 갖는 것이다.

⑦ 현상을 가리킨다. 
자신을 포함하여 세상(우주자연; 법계法界)에 실존(실제 존재)하는 모든 사물, 물질-정신적인 모든 것은 동일(고정불변)하고 독자(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실체가 아니라 연기(조건에 따라 상호의존)적으로 매 순간 생멸 변화하는 하나의 연기적 현상(연기현상이자 자연현상)이다. 영원불변한 신이나 영혼같은 상상(또는 개념, 관념) 속의 존재는 실존하는 담마(연기현상이자 자연현상)가 아니다.

나를 포함하여 세상(우주자연)에 실존하는 모든 존재는 변치 않는 동일하고 독립적인 실체(Atta, Atman)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an), 연기(조건에 따라 상호의존)적으로 매 순간 일어나고 사라지며 변하는(a·Nicca-無常한) 하나의 연기적 현상(연기현상이자 자연현상)으로 존재한다.

<역주 : 연기(緣起)는 부처님께서 사용하신 고대인도어 빠띳짜삼뭇빠따(paṭiccasamuppāda 빠알리어, pratītyasamutpāda 산스크리트어)를 한문으로 번역한 것이다. 빠띳짜삼뭇빠따(paṭicca-sam-uppāda)는 ‘조건에 따라(paṭicca) 함께(sam; 상호 의존하여) 일어남(생기함, 발생함; uppāda)’이라는 뜻이다.

연기(緣起)는 인연생기(因緣生起), 즉 ‘인(因: 직접조건, 원인, 직접적 원인)과 연(緣: 간접조건, 간접적 원인)에 따라서 생기(生起)함’의 줄임말이다. 한문(중국어) 경전에서는 산스크리트어 프라티트야삼무파다(pratītyasamutpāda)를 발랄저제야삼모파다(鉢剌底帝夜參牟播陀)로 음사하여 표기한 경우도 있다. 영어 경전에서는 ‘dependent arising(의존하여 생기함), conditioned genesis(조건 지워진 생성), dependent co-arising(의존된 상호발생), 또는 interdependent arising(상호 의존하여 생기함)’ 등으로 번역한다.

연기(緣起; paṭiccasamuppāda)를 우리말로 번역하면 ‘조건(직간접조건; 인연)에 따라 상호 의존하여 생기함(또는 발생함)’ 또는 ‘조건에 따른 상호의존에 의한 생기(또는 발생)’ 정도로 표현하면 유사하다.

예컨대, ‘사과나무는 사과 씨를 인(因: 직접조건)으로 해서 토양, 햇빛, 빗물 등을 연(緣: 간접조건)으로 해서 이들이 상호의존 작용해서 생기한다.’ 이를 연기라는 용어를 써서 표현하면, ‘사과나무는 사과 씨, 토양, 햇빛, 빗물 등이 연기(조건에 따라 상호의존) 작용해서 생기한다.’라고 표현할 수 있다.

이 세상(우주자연)에 실존하는 ‘모든 것은 조건(인因-직접조건과 연緣-간접조건)에 따라 상호의존하여 생기하고(일어나고, 발생하고), 그 조건(인연)이 다하면 소멸한다’는 연기법은 물질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물질-정신적인 것이든지 간에 예외가 없는 우주자연의 법칙이다.>

연기법[緣起法; Paṭiccasamuppāda Dhamma]은 연기법칙을 가리키기도 하고 연기현상을 가리키기도 한다. 나 자신을 포함하여 세상(우주자연; 법계法界)에 실존하는 모든 것은 연기법칙이라는 우주자연의 법칙에 따라 생·멸(생기·소멸)하며 변화하는 연기적 현상(연기현상이자 자연현상)이다.

.

인도어로는 담마(Dhamma, 다르마Dharma)라고 한 마디로 말할 수 있지만, 그 의미는 위와 같이 부처님 가르침이고, 실상과 진리이고, 보편적 법칙 등등으로서 배우고 실천되어 닙바나(열반)를 얻어야 하는 것이다.

세존(世尊; 세상 사람들의 존경을 받을만한 분, 존귀하신 분)에 의해 잘 설해진 담마, 즉시 확인할 수 있고, 결과가 바로 나타나니, 와서 보라 할 만한 담마, 열반으로 인도되는 담마, 지혜로운 이 스스로 볼 수 있고 깨달을 수 있고 경험할 수 있는 담마다. 이러한 담마의 특징은 아래와 같다.

담마의 여섯 가지 특징

(1) 「올바르게, 잘, 좋게, 여실히(실제와 똑같이, ‘있는 그대로’) + 말해진 대로」 설명되었다, 가르쳐졌다 : 담마는 세존에 의해 올바르게 잘 설해진 가르침이다.

담마는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게(올바르게, 훌륭하게) 잘 설해진 가르침이다.

(2) 「아는, 현재 증명되는, 실제로 아는」 가르침 : 담마는 실증할 수 있는 가르침이다.

담마는 실증(실제로 증명) 할 수 있는, 경험(체험)할 수 있는 가르침이라는 것인데, 
① 지금 여기서 잘 볼 수(알 수)가 있는, 증명되는, 실증 할 수 있는
② 비밀이 없는, 누구라도 실제로 볼 수가 있는, 누구라도 실제로 경험(체험)할 수 있는 가르침이라는 의미다.

부처님께서 살아 계셨던 시대에 많은 종교의 스승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의 일부분을 제자에게 가르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을 가르쳐 버리면 제자와 자신이 동등하게 되어버릴 우려가 있어서 스스로의 권위나 이익을 위해서라도 비밀을 유지해 두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3) 「시간과는 관계없는, 즉시」 : 담마는 보편성이 있는, 시간(시대)과 공간(장소, 지역)을 초월한 가르침이다.

담마는 시간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 세월이 지나도 변함없는 가르침, 진리라는 것이다. 대승불교에는 말법시대(말법세상)라는 사상이 있지만, 부처님께서는 인간의 근기가 점차 떨어져서 담마를 이해하지 못하고 담마가 소멸한다고 말씀하시지는 않는다. 다만 시대에 따라 수행에 흥미를 가지는 사람이 많아지거나 적어지거나 한다고 말씀하시면서, 담마는 어느 때, 얼마의 시간이 지나도 항상 유효하고 보편적인 진리라고 말씀하신다.

담마는 세상(우주자연)을 바꾸는 가르침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바꾸는 가르침이다. 때문에 담마를 바르게 실천한 효과는 「즉시」 나타난다.

(4) 「와서 보라」

「와서 보라」는 것이 자신의 가르침(담마)에 대한 부처님의 태도다. 와서 보고 담마의 올바름과 뛰어남을 스스로 확인해 보라는 의미다.

다른 종교는 일반적으로 ‘믿어라, 믿어 주세요, 믿어 보세요’라고 말한다. 그러나 부처님 가르침(불교)은 ‘믿어 보세요’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확인해 보세요’라고 말한다.

예컨대 재가자가 일시적으로 출가하여 사원에서 불교의 생활을 체험한다. 직접 가서 자기 자신이 그 생활을 체험해 보니까 상가(승가)의 소중함과 성스러움도 알게 되고, 수행과 배움을 통해 담마를 듣고 보고 그 올바름과 뛰어남을 스스로 이해하게 되기에 그러한 것을 가능케 하는 사원의 중요성도 몸소 인식하게 된다. 그 때문에 재가자와 출가자 그리고 사원(상가, 승가)의 관계가 깊고 친밀해진다. 실제로 담마를 이렇게 일시적이든, 장기적이든 상가(승가)의 일원이 되어 체험할 기회가 많이 있는 것은 좋은 일이다.

(5) 「~으로 이끌다」

담마는 완전한 자유(해탈)와 평화, 나(와 너)를 초월한 분별 집착 없는 완전히 지혜로운 바른 사랑(자비)과 완전한 행복(열반)「으로 이끄는」 가르침이다. 담마를 바르게 알고 바르게 실천함으로써 자신을 바르게 인도하고 자신의 바른 의지처가 될 수 있기에 담마는 인도적인 가르침이다. 즉 담마는 바르게 알고 바르게 실천하는 자를 자비와 평화, 해탈과 열반으로 인도하는(이끄는) 가르침이다.

(6) 「각자에게 경험된다」 :

담마는 현명한 사람 각자에 의해 경험되는 가르침이다.

부처님께서는 깨달음(해탈, 열반)까지의 길을 제대로 설명하실 수가 있고, 그 길을 계발하는 방법을 가르치실 수 있지만, 그 길은 각자가 스스로 걸어가야 하는 것이다.

담마는 각자, 자기 자신이, 스스로 수행하고 노력하여 실제로 그 성과를 자기 자신의 경험으로 얻을 수밖에 없는 가르침이다.

.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이 가르침은 현세에 유익하고
시간을 초월하고
’와서 보라’ 할 만하고
실생활에 적용되고
슬기로운 사람 각자에게 경험된다.”

<맛지마니까야(중아함)>

.

모든 존재가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正法)을 따라
행복하고 평화롭고 자유롭기를...

May all beings
fillowing the Buddha’s sammā Dhamma
be happy.. be peaceful.. be liberated(모든 괴로움과 속박으로부터 자유롭기를, 해탈하기를)...

  • 목록
방송 다시 듣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