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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5일 중앙일보에 보도된 정목스님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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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마음이 힘든 이들에 기쁜 소식 … 인터넷 명상 방송 개국!
[중앙일보]
`유나 방송` 정목 스님
`그 마음 속, 무엇이 숨어 있나요`


조승희. 지난달 16일 미국 버지니아공대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의 범인입니다. 무려 32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 희대의 살인마에게, 그러나 한.미 언론과 국민은 작은 연민을 보냈습니다. 그토록 끔찍한 방식으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누구도 그 마음 속 지옥도를 들여다보거나 어루만져주지 못했음이지요. 정목(47) 스님은 이런 말도 합니다. "그를 마구 비난하지 못하는 심리 밑바닥에는 자기 안에도 그러한 불안이 숨어있음을 저마다 알기 때문"이라고.

정목 스님은 비구니입니다. 하지만 라디오 청취자들에겐 불교방송 '마음으로 듣는 음악'(월~일 저녁 7시~8시)의 진행자로 더 유명합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승려 MC이자, 전화상담기관 '자비의 전화' 개설자이며, 천주교 수녀, 원불교 정녀들과 함께 삼소회(三笑會)를 만든 사람. 이런 그가 이번에는 세계 최초의 명상 전문 인터넷 방송국 '유나(una.or.kr)'를 열었습니다. 마음의 병을 앓는 이들에게 그 마음 다스리는 법을 안내하고 싶다 합니다.

내 마음 나도 모르겠고, 마음이 힘들어 몸도 힘들고, 머리로는 알겠는데 맘이 안 따라줘 하루하루 부대끼시나요. 정목스님이 나직히 속삭입니다. "지금 멈추세요, 떨어져 바라보세요, 현재에 집중하세요."


부암동 주택가 저 끝. 인왕산을 바로 뒤에 두고 회색빛 건물 한 채가 야트막이 엎드려 있다. 미닫이문 한쪽 작은 푯말이 눈에 띈다. '명상박물관-오래된 인연'. 정목 스님과 유나 방송이 몸담은 곳이다.

"많은 분의 도움으로 어렵게 완공했어요. 명상하고 마음 공부를 하고, 때로는 그저 햇볕 쬐며 맘 고마운 이들과 밥도 먹지요." 아닌 게 아니라 볕이 좋다. 방송 스튜디오는 지하에 있다. 제법 값 나갈 듯한 장비들. 스님은 "인터넷 방송이라 이만으로 끝났다"며 "우리 말과 음악이 보이지 않는 선을 타고 세계로 퍼져간다니 참으로 놀랍지 않으냐"고 했다.

스님은 재주 많은 사람이다. 노래 잘 하고 악기 제법 다루고 말과 글도 맛깔스럽다. 시조시인 초정 김상옥은 그를 두고 '상모(相貌)가 알토란이나 깎아놓은 밤'이라 했던가. 표현대로 똘망똘망 명랑하고 잘 웃는 이가 열 여섯 어린 나이에 머리 깎고 절에 들었다". 너무 좋아 삭발식 내내 싱글벙글 웃어댔어요. 내 집에 온 듯, 엄마 품인듯 첫날부터 행복했지요."

서울의 평범한 가정에서 나 평범한 어린시절을 보낸 그는 다만 마음 속 멈추지 않는 질문이 있었다. '왜 쟤는 나무고 나는 사람이지?' '왜 꽃잎이 나는데 내 가슴이 울렁댈까'. 친구들과 어울려도 크게 즐겁거나 재미있지 않았다. 열여섯 살, 불쑥 찾아간 인천 용화사에서 한 스님을 만났다. 우리 불교계의 큰어른 송담 스님이었다.

"무슨 일로 왔냐시기에 '공부도 재미없고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고 답답해서 왔다'고 했지요. 스님은 '답답하다? 누가 묶어놓았기에 답답하지?' 하시며 껄껄 웃으시더군요." 그 만남을 계기로 소녀는 절 사람이 되기로 결심했다. 맘 속 오래 품어온 존재에의 의문을 이곳에서라면 해결할 수 있겠다 확신한 때문이었다.

출가 뒤 동국대 선학과를 졸업한 그는 스물여섯 나이에 서울대병원 법당 지도법사가 됐다. "생로병사. 경전 내용이 그대로 눈앞에 펼쳐지더군요. 자식에게 버려지는 부모, 고통으로 비명조차 못 지르는 이들을 보며 종교인으로서의 한계에 절망도 많이 했어요." 아픔을 감당할 수 없을 땐 서울역으로 달려가 무작정 부산행 기차를 잡아탔다. 먼 도시를 오르내리며 울고 또 울었다.



현재>과거 + 미래 현존에 집중하면 걱정 사라져

  
1988년부터 2년 동안은 '생명의전화' 상담자로 일했다. '자비의전화' 개설에 앞서 훈련을 겸한 것이었다. 서울대병원 일에 중앙대 대학원(사회복지학)까지 다니며 매주 2~3회 밤 9시부터 새벽 6시까지 꼬박 전화통에 매달렸다. "세상이란 게 그런 식으로 존재한다는 걸 처음 알았죠. 너무 충격적인 사연을 접한 새벽에는 귀갓길에 육교 난간을 붙잡고 주저앉기도 했어요."

그러면서 종교인으로서의 소명에 눈떴다. "종교인은 세상에 도움이 되는 존재여야지요. 세상 사람과 함께 걷고 고뇌하며 함께 발전해야 해요. 깊은 산속 암자에서 깨달음을 위해 정진하는 것도 좋은 일이나, 저는 번잡함 속에서도 스스로 고요하고 널리 평안을 구할 수 있는 이가 되리라 했습니다."

1990년 5월, 불교방송 개국과 함께 음악프로 '차 한잔의 선율' DJ를 맡게 됐다. 이듬해부터는 이웃돕기 프로그램인 '거룩한 만남'을 진행했다. 이 달동네 저 시골로 쫓아다니며 도울 이를 만나고 성금도 직접 전달했다. 1991년 한국방송대상 사회상을, 1993년에는 한국방송프로듀서연합회 사회상을 수상했다.

  
1995년 스님은 돌연 방송계를 떠났다. 그러고 10여 년. 그가 깊이 발 디딘 곳은 마음 공부 자리였다. "하루를 온통 걷고 명상하고 공부하는 데 바쳤어요. 생로병사가 일상사 속에 있는데 그 문제를 해결할 구체적 방법을 알고 싶었지요." 2000년 '마음고요선방'을 열었다. 다양한 종교를 가진 뜻 맞는 이들과 함께 정진했다. 인도.티베트.네팔.미얀마.중국.일본 등지로 구도여행도 떠났다. 관심은 늘 '우리나라 보통 사람의 정서에 맞는 마음공부 프로그램'을 찾는 데 있었다. 2005년 12월 그 작업이 얼마간 마무리되자 '마음으로 듣는 음악'으로 방송계에 복귀했다.

그는 "마음공부를 하면서 '안팎이 서로 다르지 않음'을 깨닫게 됐다"고 했다. "돌이며 집이며 나무들이며, 어느 순간 제가 그 안에 그냥 들어가 있더군요. 생각이 딱 끊어지고 한 호흡 들어왔다 한 호흡 나가는 이치를 깨닫게 됐어요. 세상이란 그렇게 무심히 오가는 것이더군요."

그가 말하는 명상법은 '관찰수행' 혹은 '마음 바라보기'다. "마음이란 느낌과 감정이 들고 뛰는 무대입니다. 마음은 과거나 미래에만 속해 있는데, 그건 '생각'도 마찬가지예요. 지켜보기란 그렇게 멀리서 헤매고 있는 자아를 '지금 현재'로 데려오는 것입니다. 그때 시간은 사라지고 순간은 완벽해지지요." 그는 "생각의 코드를 뻐버려라"고 말한다. "생각 자체가 나쁜 건 아니지만 그중 90%는 별 쓸모가 없는 것이지요. 우리가 현존에 집중하면 마음의 그릇된 분별(생각)은 사라지고 기쁨이 찾아옵니다."

하지만 바쁜 현대인에게 마음공부란 너무 먼 얘기 아닐까. "어렵게 생각 마세요. 밖으로만 뻗어가는 관심을 안으로 모아주면 됩니다." 그는 "집중이란 참 유익한 것"이라 했다. "밥 먹을 때도 오직 거기에만 집중하면 많은 것이 달라집니다. 달고 고소한 밥맛이며 씹히는 감촉까지 생생하게 느껴져요. 밥이라는 소우주 안에서 과거와 미래는 사라져 버리지요." 그는 "집중할수록 불필요한 생각과 감각들은 마음의 뒤편으로 밀려나간다"며 "그를 통해 정신이 맑아지면 마음이 넓어지고 몸도 가벼워진다"고 했다.

그가 뜻있는 이들과 힘을 모아 유나방송을 시작한 것도 이러한 명상의 기쁨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다. 스님은 "불교도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마음의 평화를 원하는 이라면 누구나 유나의 식구"라고 말했다. "유나방송이 작은 씨앗, 혹은 한 그루 나무의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해요. 거기서 뿜어나온 에너지가 넓게 퍼져 언젠가 아마존처럼 거대한 의식의 숲을 이루기를, 그 마음의 숲에서 좀 더 많은 이가 본래의 나를 찾게 되기를."



삶이 고단할 땐 … 정목 스님의 도움말

■자녀 문제로 속상한 엄마에게

살다 보면 우리 기대대로 되지 않는 일을 자주 만나게 됩니다. 아이의 성적이 떨어지거나 행동거지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도 그중 하나지요. 그때마다 많은 부모들은 화를 내며 아이와 자신을 책합니다. 하지만 그런 혼란과 갈등을 잘 살펴보면, 우리를 속상하게 하는 것은 외부의 일 자체가 아니라 그에 대한 우리의 해석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세상 일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일어나 주지 않으며, 자식을 포함한 누구도 우리 원대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타인의 우주를 자기 기대에 맞추려는 것 자체가 고통이요 혼란입니다. 더구나 그 기대의 내용도 상황에 따라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르지 않은지요. 어찌 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실망하거나 슬퍼하기보다는 대상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게 현명합니다. 나무끼리도 거리가 알맞게 떨어져 있어야 가장 좋은 에너지를 교환할 수 있듯, 부모와 자식 사이도 그렇지 않을까요. 지나친 집착과 밀착은 관계를 파괴하고, 너무 먼 거리는 아무 도움도 줄 수 없게 만든답니다.

■스트레스로 피곤한 직장인에게

긴장하지 않고 유연한 몸과 마음을 지니려면 먼저 사람과 사물을 대하는 자신의 태도를 돌아봐야 합니다. 부정적인 태도는 자신의 기운을 꺾고 주변에도 나쁜 영향을 끼칩니다. 그럴수록 일의 질은 떨어지고 만족감도 적어지니 스트레스 또한 커질 밖에요.

스트레스를 푸는 가장 쉬운 방법은 자신이 얼마나 긴장하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어깨가 필요 이상 위로 치켜 올라가 있다거나 숨을 충분히 내쉬지 못하며 참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면 불편해서라도 스스로 긴장을 풀게 되지요. 평소 몸이 긴장하고 있는지 편안한 상태인지를 살펴보는 연습을 하면 좋습니다. 1시간마다 의식적으로 깊게 심호흡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요.

상사나 동료로 인해 화가 치밀어 오를 때는 자신의 마음을 향해 재빨리 '잠깐!' 또는 'Stop!'하고 정지 명령을 내립니다. 그러면서 들이마시고 내쉬는 호흡에 정신을 집중합니다. 들숨을 향해 '들이마심' 하고 속으로 이름 붙이며 들이마시고, 날숨을 향해 '내쉼' 하고 이름 붙이며 숨을 내쉬는 거지요. 한 번, 두 번, 계속 호흡에 이름을 붙이고 심호흡을 하다 보면 어느새 분노가 가라앉게 됩니다.

■쿨하게 살고 싶은 당신에게

'누구에게도 방해 받지 않고 내 방식대로 사는 것'을 요즘 '쿨하게 산다'고 하지요. 하지만 도가 지나쳐 혼자만의 세계에 침잠한 이들도 적지 않은 듯합니다. 물론 처음엔 그런 방식이 좋을 수 있습니다. 복잡함에서 벗어난 듯 홀가분하겠지요. 하지만 누구도 고립돼 살 수는 없습니다. 골목 하나만 돌아서면 또 다시 상처를 입게 되지요. 이는 내면의 평화를 회복한 것이 아니라, 불씨를 덮어놓은 것에 불과합니다. '방해받고 싶지 않아!'라고 하지만, 실은 내면 깊숙이 더 인정받고 싶고 더 넓은 공간으로 나아가고 싶은 것이 아닐까요.

관계를 풀어감에 있어 상대가 나를 어떻게 대해주느냐에 초점을 맞추면 배울 것이 없습니다. 부모나 형제, 직장 동료의 형편없는 행동에 초점을 맞출수록 내 삶은 빗나갑니다. 그보다 내가 세상에 온 목표, 즉 성품을 보다 고귀하게 성장시키고자 하는 이상을 향해 노력하고 자제심을 발휘하는 것이 현명합니다.

다른 존재와 조화를 이루려는 노력은 모든 이에게 주어진 우주의 특명입니다. 자연은 사람에게나 사물에게나 완벽한 답을 주지 않으니까요. 조화를 이루려 노력하다 보면 우리는 어느새 자유를 얻게 됩니다. 자유란 좋은 대로 행동하고 편안함과 쾌락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감정의 노예가 되는 것일 뿐, 자유가 아니니까요. 제가 살아오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면 자유란 우리에게 참 많은 것을 요구한다는 것입니다.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감당해내며 기품 있게 행동할 때에야, 비로소 자유는 내면에 모든 것을 허락한답니다.


* unamaster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7-09-02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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